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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숫자를 세십시오!

안제이 스텟즈 지도법사님과의 질의응답

제자: 지난 번에 법사님께서 수행의 질을 높이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제가 진언하는 것을 알아채고 그 숫자를 세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집안일과 같은 일상적인 활동을 할 때, 손가락에 카운터를 끼고 있을 수가 없어 빼게 됩니다. 그래서 진언하는 숫자가 아주 적습니다. 최대한 진언하려 노력하고 카운터로 숫자를 세지만 어떨 때는 겨우 4000번 정도이고 어떨 때는 7000번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진언하는 숫자를 세는 게 도움이 안되나봐’ 또는 ‘다르게 수행해야 할까?’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 그렇게 진언하는 숫자가 일정하지 않은 걸까요? 설거지를 하거나 잡초를 뽑거나 일을 할 때, 관세음보살염을 하고 있고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적어 보지만 진언의 숫자는 일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세야 할까요?

 

안제이 스텟즈 지도법사님: 먼저 진언하고자 하는 수를 정하고 숫자를 기록하십시오. 5,000번을 할 거라고 정했다면 그저 그렇게 해보려고 노력하세요. 그렇게 하는 것이 중심을 강하게 만듭니다. 진언횟수를 세는 것이 중심을 강하게 해 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언가를 하기로 결심하고 그렇게 되도록 하는 것이 중심을 강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7,000번을 하고 다른 날은 3,000번만 한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를 아십니까? 하루를 마감할 때 진언한 숫자를 기록하면서 그 옆에 그 이유를 적어보십시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왜 10,000번이지? 혹은 왜 3,000번이지? 그러면 그 날 하루 무슨 일이 자신에게 있었는지 보다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뜻하지 않는 상황에 부딪히고는 합니다. 그래서 방해가 적은 아침 시간에 수행하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매일 요리를 해야 해서 하루에 7,000번을 할 수 없다면 7,000번을 목표로 삼지 마십시오. 5,000번을 할 수 있다면 이 숫자를 목표로 정하세요. 그리고 가능한 매일의 스케줄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하루의 스케줄이 매일 비슷하다면, 중심 또한 강해지게 됩니다.

 

강한 중심을 갖는다는 것은 법 에너지를 갖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세 가지 종류의 에너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본래의 에너지인 원기를 받고 태어납니다. 모든 사람이 조금씩 다르지요? 어떤 아이는 쉬지 않고 뛰어다니는데, 다른 아이는 몸이 약해 쉽게 지칩니다. 원기는 죽을 때까지 써야 하는 것이므로 잘 보존해야 합니다. 원기는 음식이나 휴식, 움직임으로 보충될 수 있고 다른 에너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 중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공기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3의 법칙이 있습니다. 즉, 평균적으로 인간은 3 주 동안 먹지 못하거나 3일 동안 물을 마시지 못하면 죽고, 3분만 숨을 쉬지 못해도 죽거나 뇌에 심한 손상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호흡은 아주 중요합니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노인이든 젊은이든 인간은 누구나 호흡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 호흡을 더 많은 에너지를 얻는데 이용하십시오. 그리고 참선하면서 모를 뿐을 유지하면 여러분은 우주의 에너지와 연결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배터리는 더 많이 충전됩니다. 이 세 가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면 여러분의 중심은 강해집니다. 이것이 에너지를 얻는 방법입니다.

 

(컵을 들어 올리며)여기 물잔이 있습니다. 이 안에 물을 붓습니다. 물을 붓기 전에 여러분은 먼저 잔이 깨졌는지, 혹은 새는 건 아닌지 확인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새는 구멍이 있습니다. 아무리 잘 먹어도, 아무리 많이 잠을 자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호흡을 하고 참선을 하더라도 항상 피곤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자신의 에너지를 어딘가 주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몸이 구멍이 나 있는 그릇인 셈입니다. 눈, 귀, 코, 입, 그리고 다른 여러가지 구멍들이요! (웃음) 숭산선사님은 사람들이 자신의 에너지 대부분을 눈을 통해 잃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텔레비젼이나 컴퓨터, 핸드폰을 많이 보고 있다면 그 화면들을 보느라 많은 에너지를 잃고 있는 것입니다.

 

사찰의 규칙에 “네 일이 아닌 곳에는 가지 말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많은 에너지를 잃을 것입니다. 우리는 불필요하게 너무 많이 움직이며 돌아다닙니다. 고속도로 위에 저 버스들이 보이시나요? 이 산을 보러 가자, 저 산을 보러 가자, 사람들은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합니다. 제자 중에 한 보살님이 있습니다. 이 분은 너무 피곤해서 직장도 그만두었는데, 지금은 전 세계를 여행하러 다니느라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싸움터를 어디로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사찰 규칙 중에 “나와 상관없는 얘기는 듣지 말라”는 좋은 규칙도 있습니다. 누구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합니다. 정치인은 뭐라고 했는지, 미국 대통령은 무어라 했는지 등등. 텔레비젼을 보거나 정치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많은 에너지를 잃습니다. 그 이야기의 대부분이 실제로는 자신과 관계없는 것입니다. 북한이 설사 남한에 미사일을 발사한다 하더라도, 발사하기 전에 KBS 1채녈을 통해 방송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뉴스”라는 말은 틀린 것이지요. 새로운 소식이 아니라 오래된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멈출 수 있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 그것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아, 지구 온난화야, 남극에서 큰 빙하가 떨어져 나갔대”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까’ 걱정을 합니다. 그것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대신 걱정을 하느라고 에너지를 잃고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의 삶은 수동적입니다. 스스로의 삶을 조정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뭔가를 보면 눈을 잃고 뭔가를 들으면 귀를 잃는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도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주도적이라는 뜻은 여러분이 책임을 진다는 의미입니다. 뭔가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매일 아침마다 좌복 위에 앉을 때, 여러분은 좋은 습관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좌선할 때, 수동적인가요, 아니면 주도적인가요? 그저 좌복 위에 앉아 있다면 수동적인 것입니다. 주도적이 되고자 한다면 좌선할 때 ‘관세음보살 진언을 할 거야’ 라고 말하고 그렇게 하십시오. 진언의 숫자를 세십시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은 주도적으로 좌선하고 생각을 끊어내는 것입니다.

숭산선사님은 언제나 “좌선할 때는 뭔가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좌선하면서 관세음보살 진언의 숫자를 세려고 마음먹었다면, 하십시오! 그것이 당신의 책임입니다. 그것이 ‘주도적’의 뜻입니다. 즉, 셀 수 있는 것,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선은 또한 자신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삶을 이해하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습관, 자신의 업을 이해하십시오. 또, 자신의 스케줄을 이해하세요. 그러면 여러분의 삶은 아주 단순해집니다.

 

우리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모든 위대한 스승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은 아주 행운입니다. 부처님의 법은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지는지, 어떻게 그 모든 세는 구멍들을 막을 수 있는지에 대한 가장 완벽한 “매뉴얼”입니다. 우리가 숭산선사님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84,000가지의 경전을 모두 읽어낼 수는 없으니까요. 선사님은 아주 단순하게 가르쳤습니다. “아무 것도 원하지 말라”, “아무 것도 만들지 말라”, “아무 것도 점검하지 말라”, “아무 것도 붙잡지 말라”,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말라”, “뭔가를 할 때에는 그저 해라”, “어떤 것을 할 때에는 100% 해라.” 여러분의 수행이 관세음보살 진언을 반복하며 숫자를 세는 것이라면, 그저 진언을 반복하고 숫자를 세십시오. 그것을 명징하게 하십시오. 5,000번을 하겠다고 결심했다면, 잠자기 전에 끝내려고 노력하십시오. (제자를 바라보며) “숫자를 세고 있는데 요리할 때는 셀수가 없다”고 말했지요. 주도적으로 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수행을 보다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도 특별할 것이 없는 아주 단순한 사례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진리이기 때문에 아주 특별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상 진언을 하고 있는데… 셀 필요가 없는데…”라는 꿈을 꿉니다. 부처님이라면 셀 필요가 없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삶에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어디에 세는 구멍이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이 우리를 조정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종종 우리는 자신의 행동에 놀라고는 합니다. 우리가 바깥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두 가지 혼돈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이미 자신의 머리 속에 혼돈 하나를 갖고 있으니까요! 왜 여러분은 경제나 정치, 다른 사람의 문제들을 이해하려고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면 모든 것을 이해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깥 세상을 먼저 이해하려고 한다면 자기자신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바깥”을 비워내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비울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비운다면 바깥 역시 저절로 비워질 것입니다. 그러면 힘이 생깁니다. 그러니 계속 진언의 숫자를 세기 바랍니다.